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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도서 리뷰] 기독교를 정복한 로마를 읽고

오늘은 기독교를 정복한 로마를 읽고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페르시아 출신의 종교인 영지주의

성(Saint) Austine은 요즈음의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의 중산 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로마로 유학하여 두루 당대의 로마 학문을 수렵한 다음 수사학 교사로 밀라노에서 밥벌이를 하던 전형적인 식민지 출신의 로마 시민이었다. 당시 로마 제국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태양이 서산에 걸린 지경이라 주위에 흉측하게 생긴 이민족들인 요놈 저놈이 이리 쑤셔보고 저리 쑤셔보는 불안한 상태로서 정치적으로 로마의 주도권은 이미 동로마 제국에 넘어간 상태이고 동로마 제국의 기독교와는 담을 쌓고 있었던 서로마 가톨릭 세력들이 간신히 페르시아 출신의 종교인 영지주의(Gnoticism)를 넘어서고 있는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혼란기에 있었던 혼돈의 상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세적 세계관

어찌하든 이 놈이 서양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볼 수가 있는 데 가장 중요하게는 첫 번째로 이론적으로 흠 많은 서로마카톨릭을 물불 가리지 않고 변호하여 당시에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동로마 가톨릭에 대항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데에 있으며 두 번째로 서로마 제국 내의 다양한 세력을 교권 중심적인 체제로 화끈하게 묶어 세움으로써 제대로 '예수 한 번 믿어보자'는 세력들을 그들의 종교적 공동체로부터 추방할 수 있는 이단(heathen)으로 규정하는 독특한 아이디어의 제공자이며 세 번째로 교권적 체제(Hierachial System)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질서를 이론적으로 정립함으로써 이후로 서양의 역사를 거의 천 년이나 지속되게 하는 중세적 세계관을 확실하게 제시하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재미라는 재미는 다 본 다음에 수도승이 되었던 북아프리카 출신의 로마 지식인이 고군분투하였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가톨릭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자. 가톨릭이라는 말은 보편적(universal)이라는 뜻으로서 당시의 모든 교회를 통괄하여 지칭하는 개념적 의미로서 公교회를 의미한다.

기독교 탄압의 시대

쉽게 말하면 요즈음처럼 카톨릭하면 기독교의 일개 분파인 현재의 서로마 가톨릭 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존재했던 모든 교회를 거룩한 교회로서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된 신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므로 가톨릭이라는 말은 당시에는 모든 거룩한 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분류가 필요가 이유는 많은 분들이 기독교의 일개 분파인 서로마 가톨릭을 기독교 본류로 인식하는 오류 때문인 데 이는 단지 이후 서로마 가톨릭 하에 있었던 세력들이 중세 말레서부터 근대 이후에 무력적 압도를 점거함으로써 무력으로 인해 발생한 외연적 확장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어찌하든 이 신학자가 교권적 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때에 첫 번째로 마주친 문제는 기독교 탄압 시대에 배교자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에 로마는 기독교를 버린다는 싱징으로서 성경을 로마 군인에게 가져다주면 기독교인이 아닌 것으로 인정을 받아 로마 정부로부터 사면을 받았는 데 상당수의 고위 성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성경을 바치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 탄압의 시대가 끝난 뒤에 이렇게 공식적으로 배교 행위를 한 사람들이 여전히 고위 성직자로서 버젓이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그래서 인간을 구원하는 행위인 성례전을 기독교에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이다.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탄압의 시대를 신앙으로 지켰던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 어거스틴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 배교했던 고위 성직자들을 갖가지 이론으로 옹호하고서 이들이 계속 호사를 누리도록 이론적으로 조직적으로 고무 조장한 것이다.

중요한 정치적 의도

다시 말하면 어거스틴에게는 종교적 순수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동기가 중요했던 것이다. 즉 어거스틴에게는 어떤 종교적 깊이에 들어가기보다는 기독교를 통하여 동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서로마 제국을 굳건하게 다질려는 정치적 의도가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탄압의 시대를 꿋꿋하게 견딘 세력을 이단으로 규장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자행하여 무형으로 유형으로 그들을 탄압한 것은 기독교의 교권적 질서 옹호라는 이름 아래에 어떤 정치적 질서를 확고하게 세우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 분명하다. 이는 어거스틴이 기독교를 피지배자의 입장에서보다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해했다는 구체적인 자료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로 이야기되는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운동은 이때 이미 그 근거를 완전하게 상실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기독교적 본질관은 상관없는 서로마적 해석 아래에서 기독교가 해석되고 이해된 것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변방인 갈릴리를 중심으로 시작한 민중적인 운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교권으로 상징되는 지배자 즐을 위한 기독교로 재무장되었던 것이고 이것이 뿌리를 이루어 오늘날의 기독교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중대한 기독교의 반전에 지대한 공로를 행한 이가 바로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자(Neo-Platoism)였다고 하는 것은 고귀한 세력의 존재로서 기독교의 교권 세력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고 이러한 고귀한 세력에 대한 어떠한 폄하도 용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 교권 세력

어거스틴이 생각한 고귀한 세력은 신적인 능력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어떤 행위에도 적용되지 않는 신성불가침한 경계를 그음으로써 기독교 교권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중세적 질서를 확립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는 기독교가 출발한 선상과는 어떤 유사성을 지니지 않은 로마적 통치 이념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음은 불문가지인 것이고. 그러므로 종교적 태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황 무오설이니 서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전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후안무치하고 교만하지 짝이 없는 - 어쩌니 하는 서로마 가톨릭의 교리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이고 소위 개신교(Proteatant)로 지칭되는 서로마 가톨릭이라는 분파의 분파가 주장하는 나름 근대적 사고를 반영하는 서유럽적인 사고에 기반한 교리 또한 웃기는 난센스에 기반한 이야기를 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더 웃기는 것은 이러한 서양적 사고를 금지옥엽으로 여겨서 정말로 말도 안되는 허튼소리를 하는 짓을 하는 오늘의 한국 기독교도들을 보면 실소를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어찌하든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편에서 교권적 지배를 위한 어거스틴의 활약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p.s

지금도 이집트에 가면 어거스틴에 의해 이단으로 난도 당했던 콥틱교도(coptis)들이 이슬람 아래에서 소수로( 약 10%)로 존재하고 있다. 이집트를 방문하시거들랑 콥틱교회를 방문하면 가장 원시적으로 남아 있는 기독교를 보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필자가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라는 곳에 들렀을 때에 보았던 예수의 초상화가 콥틱교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인 데 지금까지 보았던 예수 초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을 사족으로 말하고 싶다. 단 예술적으로 가 아니라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이상으로 기독교를 정복한 로마에 대한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