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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도서 리뷰] 우파니샤드

오늘은 우파니샤드에 대한 도서 리뷰를 진행합니다.

처음으로 인도철학을 접할 때의 기쁨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당시에 철학에 관련된 짧은 책들을 출판사에서 발행한 우파니샤드라는 책이었는 데에 그 책을 저녁 햇살을 받으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에이스 비스킷이 커피를 빨아들이는 듯한 감격을 누리며 읽던 기억이 새롭다. 그 뒤로 30대에 들어서 이제는 제법 두꺼운 우파니샤드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도 처음 읽을 때에는 미치지 못하지마는 역시 읽는 동안 어쩌면 어떤 절대자에 대한 인도인들이 인식이 이리도 오묘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가에 대해서 찬탄을 금치 못했었다.

우파니샤드

필자가 지난 날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은 인도철학에 관련된 많은 이들의 인식의 필자와 비슷하다고 여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느낀 기독교가 가지는 배타성과 호전성에 신물이 난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여자들까지 죽이라는 잔인하고도 참혹한 예언을 소위 예언자라는 사람이 신의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차마 그것을 실행하지 못한 왕을 신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로 해석하는 이토록 극악한 심성에 바탕을 둔 배타적이고 비인간적인 기록을 '경전(cannon)'으로 여기고 사는 인간들에 지친 필자에게는 우파니샤드가 가지는 절대자에 대한 꾸밈없는 고백 이외에는 다른 세상사가 끼어 있지 않은 책의 내용이 필자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파니샤드에 대한 이러한 태도에 필자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감동이 문자로 기록된 유산을 통해 전해진 것이기 때문에 문자가 가지고 있는 배경(context)이나 상황을 제대로 읽음으로써 이러한 정신적 고결함과 순수함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사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위치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해 비로소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베가 창조신

서양에서는 문명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단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문명이라고 불릴 수 있는 험악한 무기류를 생산에 능통한 부족들이 판을 치고 있던 시절인 대략 서양인의 주장에 따르면 대략 B.C. 20 - 15C경에 우파니샤드를 생산한 베가 철학이 발생하게 되는 데 이는 유난히도 토착 인도인들이 깊은 종교적 감성의 바탕 위에 독자적이고 독특한 자기들의 문명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필자가 직접 인도에서 모헨조다로 유물을 통해 느낀 것은 기본적으로 인도를 포함하는 인간 역사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으며 특히나 이미 15세기 경의 유뮬에서 요가상이 있다는 것은 이미 이러한 문명에 걸맞은 철학적 사고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즉 인도의 최초의 철학인 베가라고 하는 것이 당시의 인도가 가지고 있었던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당시에 인도 문화가 가지고 있었던 체제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베가를 읽으면서 읽어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들이 베가를 통하여 신의 존재에 대한 해맑은 찬양을 드린다 하여도 이미 베가를 잉태했던 사회는 창조신을 가지고 있는 어느 정도의 권위적인 중앙 정부를 지닌 사회를 지니고 있으며 베가라는 지적인 작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적인 사회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인도인들은 베가라는 창조신에 대한 찬양 행위를 통해 그들의 사회에 있어서 강한 결속력을 가져내는 일정한 구심점의 역할을 해냈음을 충분하게 추측할 수가 있으며 이를 행하는 전문적인 지적 행위자들 역시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대상으로 용인될 정도의 지적 종교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형성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따라서 현재의 베가 철학을 읽는 동안 우리가 느끼는 그들에 대한 순수함과 해밝음은 일견으로 타당할 듯 하나 베가가 탄생한 당시의 사회로 돌아가 우리가 베가 철학을 대했을 때에는 베가 철학이 중세의 기독교처럼 동일한 역할을 당시 사회에서 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베가 철학이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로 오늘의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에 베가 철학의 가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는 단순하게 인간이 처하고 있었던 실존적 상황에 대한 인간의 해석을 넘어 이미 베가 철학을 통해 인간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하나의 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재의 인도가 처해있는 계급적인 처참한 현실을 볼 때에 현재까지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요체로서 존재하는 베가의 현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이 확실하게 이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가 철학은 인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정신적인 틀

약간의 변형을 시대에 따라 겪었을지라도 기본적으로 사회를 어떤 일정한 틀 안에서 규정하여 유지하려는 끊임없는 지베계급의 정신적 시도와 엮여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베가 철학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중동 지역에서 출발한 종교에 비해 평화적이고 덜 공격적이었다고 해서 그들이 강건하게 인간의 공격성을 잘 제어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베가 철학자들이 채식을 하고 묵상을 하고 각종 다양한 자세를 통해 수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종교적 보편자 혹은 종교적 엑스터시에 도달했던 것이지 잘 제어된 인간의 본성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추구했던 부류들은 인도 사회에서 비주류적인 위치였지 주류적인 위치가 아니었음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동시에 인도의 비주류들이 추구했던 방법이 베가 철학이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적 영향 때문에 언제나 도피적이고 소극적으로 인도 사회에 대처했음도 아울러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베가 철학은 각종의 다양한 비주류로부터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내부적 요인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베가찰학이 가지고 가장 잔혹한 인간 지배 방식이라고 하겠다.

인도의 베가 철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

이 말은 사회적 이슈를 계속적으로 개인주의적 구도의 열정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언제나 사회의 주류로서 인도 사회를 계급적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지배할 수가 있었으며 이는 불교를 비롯한 모든 인도에서 발생한 개혁적 흐름이 장기적으로 보아 인도에서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인도의 베가 철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상대적으로 절대자에 대한 해밝고 순진무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은 물론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기 위한 태도로서 일찍이 채식 위주 식단과 다양한 묵상 행위는 실로 부인할 수 없게 인간의 공격성을 달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자 하는 고급의 정신적 시도라고 하겠다.

이스라엘 민족의 잔혹성과 배타성

이러한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필자가 해가 멈추는 기적을 성경과 인도 불교에서 인용함으로써 어떻게 인간이 자연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이해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비교함으로써 오늘 글을 마친다. 성경에서 해가 멈추는 기적은 이스라엘 민중이 요단강을 건널 당시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민을 학살하는 동안에 발생하는 데 그 이유는 신이 마음대로 그 지역의 토착민들을 학살하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이다. 즉 밤이 다가오면 잘 보이지 않아 토착민들을 학살 하기가 시원치 않음으로 재량껏 온작 능력을 동원하여 질리도록 실컷 학살하도록 인간을 사주하고 격려하는 신이 중동 지역에 기반한 유대교의 기독교의 이슬람의 신이다. 이미 다른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정착은 전반적으로 평화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화를 꾸며 대는 이스라엘 민족의 잔혹성과 배타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내용이다. 반면에 불교에서의 해가 멈추는 기적은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 묵상을 하고 앉아 있을 때에 발생을 하는 데 이는 부처로 하여금 마음대로 언제까지 삶에 대해 자연에 대해 우주에 대해 절대자에 대해 묵상할 수 있도록 신이 배려해 준 것이다.

얼마나 중동 지역의 해 멈춤과 비교되는가?

인간이 인간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도록 해가 멈추는 기적과 어느 인간이 인생에 대해 마음껏 생각하도록 해가 멈추는 기적. 이 글을 읽는 독자 제현이여. 제발 부처에 내려진 기적을 맛보기 바란다. 부처에게 내려진 기적을 위해 살아가는 분들이 되길 바란다. 베가 철학의 한계에 대해서 글을 쓸려고 했는데 결말이 조금은 본론으로부터 벗어난 듯하다.

우파니샤드에 대한 도서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