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호

철학이 발생 하기 이전의 신화 이야기

철학이 발생 하기 이전의 신화 이야기이다. 인간들은 신화를 막연하게 어떤 신비적인 것이라든가 불합리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재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래서 신화적 세계는 서양의 계몽주의의 도래 이래 역사적 사실로서 전혀 신빙성이 없는 말 그대로 인간의 허구의 산물로서 치부되어 자연스럽게 역사적 흐름 속에서 폐기되어 지거나 아니면 후진성 극복의 본보기로서 의도적으로 과학적 인간들에게 혹은 과학적 인간상을 추구하는 인간 군상들에게서 추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에 대한 인식은 이제는 인간의 인간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나름의 해석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신화는 새롭게 각광받는 학문이 되어 역사 이전의 인간의 사고 틀을 추적하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단지 역사 이전의 인류의 모습에 대한 탐구를 넘어서서 신화적 세계를 인식한 당시의 사고 틀이 현재의 과학적 틀보다 더 인류에게 적합한 삶의 틀로 생각하여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과학 시대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서까지 사고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더 이상 버려져야 할 비과학적인 어떤 인간의 상상 물이 아닌 인류가 인류의 과거를 추적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고 아울러 현재의 압도적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계몽적 이성주의적 세계관에 진정으로 사고하는 틀에 있어서 어떤 참신함과 본질적인 반성과 재고를 주는 귀중한 틀로서 필자는 인식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신화가 이것이 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신화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필자의 확신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역사는 거짓말 투성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말이다.

근본적으로 역사는 문자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의문의 여지없이 역사는 문자를 소유한 승자의 기록이고 문자를 독점한 지배계급의 사고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역사적 투명성에 대한 계속된 찬양에도 불구하고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해 기록된 거짓말로 점철된 문자 소유자 계급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독점적 인간들의 독점적 욕망의 성취라는 큰 틀에서 기록된 욕망의 역사일 수밖에 없으며 사실 문자는 이러한 인간의 독점적 욕망을 드러내기 위한 과대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차별 지향적인 인간들의 독점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도 반드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에 신화는 인간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온 어떤 인간 집단의 스스로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로는 사회적 격동 속에서 이리저리 비틀어지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해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어떤 집단의 정체성을 여실하게 보여 준다. 어떤 집단이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는지, 사물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어떻게 다른 집단과 적대적인 혹은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집단적 정체 의식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보편적으로 보면 중동 지방이나 유럽이나 중국의 황하 문명에 근거를 두고 있는 신화는 대개는 공격적이고 정복적이다.

 

그들의 민족의 기원은 생존을 위한 공존에 바탕을 둔 단순한 이주보다는 어떤 무기를 통한 정복적 이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에 대한 해석은 인간의 욕망의 성취를 위한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 경우가 다반사이며 신롸에 등장하는 영웅은 거친 사회 속에서 단순하게 인간의 성숙함을 지향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정복적 욕구를 다분하게 내포하고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은 상당한 정도에서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로 우월한 선택된 집단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다른 것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것을 차별 지향적인 욕망을 대표하는 신화로서 필자는 성경의 구약에 나온 각종 신화를 예로 들고 싶다. 이 말은 구약에 나오는 대부분의 신화가 사실상 중동 지역을 여러 신화들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종 지역에 기반을 두고 거주자고 있었던 여러 집단들의 정체성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창세 게에 언급된 사물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라든가 형제간의 갈등에서 보여주는 정복적 욕구에 대한 언급이라든가 계속적으로 언급된 차별성의 강조는 이러한 독 적적 욕망의 욕구가 중동의 보편적인 정서였음을 말하고 있다.

중국 문명도 마찬가지이다.

음양오행설에서 나오는 음양의 조화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확대 해석하여 동양 세계관은 조화적 세계관이니 공존의 세계관의 원천이니 이야기하는 데 이것은 이것은 문자로 기록된 찰 학적 세계관으로서 약자로부터 벌 생하는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지배 이데롤로기적 성격이 다분한 독점 지향적인 이론에 불과하다. 중국의 신화를 보면 전반적으로 자연과의 공존이 존재하지 않은 사물을 욕망의 대상으로 취하여 인간의 독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임을 직접 중국 신화를 읽어보면 직접 확인할 수가 있다 - 이 글에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다. 팔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신화르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역사 시대를 이 우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인류의 문명이 지극히 차별 지향적이어서 독점을 무한으로 지향하는 독점적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신화적 소유자 집단들의 정체성을 현재의 인류의 주도의 정치 문화적 주류로서 현재의 인간들이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류 속에서 존재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신화 중에서 유독 인간들은 정복적 욕망을 충전시키는 유전자적 요소를 지닌 소수의 집단의 신화적 정체성을 수용하여 모두가 정신없이 일방적으로 음직이고 있다는 것이며 사물과의 공존, 우주적 울림에 대한 공명, 그리고 기타의 '어쩌면'이라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대다수의 신화 틀은 도처에서 이미 무너져 내려졌다는 것이다. 즉 문자라는 인간의 발명품으로 거짓말을 꾸밀 수 없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화들의 내용에 따르면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합리화보다는 인류가 어떻게 자연과의 공존을 우주의 울림과의 공명을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하고 평화적인 모색이 확연하게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이미 철학이라는 고급적 문자 틀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형성된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미 언급한 창세기에서 언급된 많은 신화도 실은 정복적이라기보다는 공존적이라고 보아야 합당한 것이 더 많은데 이는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이라는 것이 여러 집단들에 의해서 구전되어 오던 것이 문자화 되는 과정에서 각 집단의 성격이 여과 없이 편집되어 그대로 성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점은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은 인류 역사 이래 보편적으로 인류가 공유해 왔던 어떤 무오류의 유일무이한 이론이 아니라 차별 지향적인 독점적 욕망 세력이 자신의 우월성을 다른 민족에 드러내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태도인 것이다.

중국 문명도 마찬가지이다.

인류가 무기를 손에 들고 약탈을 통해 손쉬운 식량 획득을 방법을 취한 것은 비록 영속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둔 인간의 움직일 수 없는 본능처럼 보이나 이것은 빼앗은 자들이 빼앗긴 자들에게 부여함으로써 손쉬운 약탈을 지속하기 위한 무능한 민족으로 규정하는 천형의 낙인이었음을 눈 여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깊숙하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으나 오늘은 신화에 대한 언급을 통해 인간이 익히 알고 있는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에 기반을 둔 차별 지향적인 독점적 공격성이 신화 지배적인 인류의 삶의 시기에 있어서는 결코 그 양에 있어서나 질에 있어서 지배적인 사고가 아니었음을 말하고 싶고 아울러 인간의 공격적 본성이라는 것도 대부분에 있어서 인간의 독점적 욕망 지배 세력의 합리화 과정 속에서 확대되어 보편화된 지극히 지배 이데올로기의 하나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혹시 필자의 이 글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이 계시다면 직접 도서관에 가셔서 신화를 묶어 놓은 책을 직접 보시라. 단 요사이 이리저리 해석된 신화 관련 책이 아니라 신화가 편집된 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