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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종교 이야기] 불교에 관한 생각 - 1

오늘은 불교에 관한 생각 종교 이야기 1편입니다.

반성적 토대 위에서 출발한 사상

불교는 그때까지 인도를 지배 해고 있었던 힌두이즘에 대한 반성적 토대 위에서 출발한 사상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당시의 힌두이즘이라는 것이 제의를 중심으로 하는 아리안적 사고 틀과 토착적인 뿌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원시적인 다신론적 신앙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불교는 당시에 이러한 힌두이즘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일련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중심적인 틀을 잡아 쥐고 당 시대를 움켜쥐었던 사상의 흐름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도의 북부를 중심으로 하고 있던 아리안적 문화는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농업적 생산력의 확대와 함께 밀려오는 문명적 발달을 수용하기에는 이미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일련의 인간의 내면적 흐름이 힌두이즘의 원시적인 인간의 욕망의 구현 형태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벅차 하였던 바 이제는 새로운 정신적 틀을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라는 것이다. 즉 본격적인 철기문명의 도입과 함께 확장되는 물적 토대의 구축에 따라 이것을 수용하는 적절한 정신적 틀이 요구되었던 바 불교는 이러한 것을 적절하게 수용하여 낡아버린 힌두이즘적인 사고 틀에 새로운 욕망의 구현 형태를 제시한 것이다.

당시의 시대 사상

당시의 석가모니가 불교를 설립한 당시의 분위기라는 것이 아마도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처럼 여기 저기에서 새로운 사고 틀을 주장하고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유행이었고 그리하여 저마다 이런저런 소리를 대중들을 항하여 늘어놓고 있던 여러 흐름이어서 시대적 분위가 어수선하였던 것이고 불교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 중에서 강가강을 중심으로 하여 정통적 힌두이즘에 대항하는 조그마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일개의 분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불교를 비롯한 당시의 시대 사상이라는 것이 어떻게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느냐는 문제이고 이를 깊게 뜯어보면 괜히 종교적으로 신비적인 철학적 작업으로 폼내는 작엄으로서가 아니라 심플하게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변화하는 시대적 양식에 정신적으로 작 응하였는가에 대한 냉정한 분석작업이라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이미 부처가 처음부터 주장했던 것처럼 당시의 낡은 시대에 대항하는 여러 흐름 중에서 어느 입장도 극단적으로 취하지 않은 중도적 입장에 근거를 두고 시대적 정신적 공황을 헤쳐나가고고자 했던 분파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

극단적으로 현질서를 부정하는 일련의 흐름이 있었고 반대 편에는 현실적으로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정통적인 힌두이즘의 틀 속에서 이 가출한 왕자 출신의 깨달은 이는 숲 속으로 들어가 총과 칼로 무장을 하기보다는 적절하게 전통적 우유 정도는 마시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여유를 가진 틀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밀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지 않은 정신적 구조 틀을 일체의 것은 고(suffering)로 규정하는 용감성을 지녔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이러한 고를 때려 부수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은근슬쩍 중도의 길을 내세움으로써 시대적인 변혁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 현재의 필자의 의심인 것이다. 즉 이런저런 소리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통적인 힌두이즘을 완강하게 부인하여 새로운 변혁의 길을 제시하는 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온건한 중도적 노선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적 틀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아직은 덜 깬 즉 덜 개화된 모습의 정신적 구조 틀이 석가모니의 길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비록 십여 년의 방랑 생활이 그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을지라도 결국 그의 이러한 방랑 생활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의 끊임없는 위협에 밀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된 소국 출신의 왕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측면을 눈여겨본다면 비록 끝없는 욕망을 지향하는 강대국들에 대한 나름의 반감을 가졌을지언정 결국 그의 사고가 침략자의 들을 위한 힌두이즘의 이론적 핵심인 윤회설까지 확실하게 끊어내기에는 역부 족적인 측면이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의 여타의 다른 종교적 분파와는 달리 촉망받는 미래를 담보 받을 수 있는 그 근거를 이론적 틀 속에서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는 결국 후대 몇 백 년 후에 역사적으로 실현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부처는 이런 점에서 인도의 정신적 역사 속에서 힌두이즘을 끊어냈다기보다는 계속적으로 막히지 않고 흘러가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결국 아직은 완전하게 깨지 못한 상태에서 제시된 정신적 틀로서의 당 시대를 향한 미흡한 대안 제시였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련의 정신적 개혁 작업

나중에 이러 저러한 분파가 불교 내에서 발생하나 외양상으로 드러나는 확연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이러한 기본적인 틀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며 본질적으로 이러한 아직은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정신적 체계로서 채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고 석가모니가 당 시대를 향하여 행했던 일련의 정신적 개혁 작업까지는 완전하게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나 철학적으로 보아 본격적인 인간의 내면의 세계의 발견과 탐구는 제의와 욕망적 투사로 만들어진 신에 의해 질식당하고 있던 당 시대를 깨부수고 지역적으로 인도를 넘어 동양 전체를 뒤흔드는 멋진 종교적 작업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발군의 작업이라고 하겠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멋진 부처의 인간 내면의 탐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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