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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그리스 자연철학

오늘은 그리스 자연철학을 읽고 리뷰를 해보겠습니다.

본격적인 철학 이야기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철학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인간의 생존 전략을 위한 고급적 표현의 사고 체제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인간의 사고의 흐름을 검토함으로써 어떻게 인간의 삶에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이 뿌리 깊게 박히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천박하게나마 검토해보도록 하자. 물어볼 필요도 없이 이러한 검토는 지리적으로 서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럽 대룩 뿐 아니라 그들과 비슷한 문명적 수준을 누렸던 동아시아의 중국과 서아시아의 인도를 포함하는 검토를 동일하게 시각 안에서 동일한 통찰로서 시도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

먼저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어떻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이해를 하였는지에 대해서 검토해 보도록 하자. 고대 그리스 철학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리스 문명이 현재 우리의 시대를 압도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그리스 문명의 뿌리에 대해서 먼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획득하는 첩경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화는 인간 자신과 인간과 공존하는 자연에 대해 이야기적 이해라고 본다. 즉 인간이 처한 생존이라는 실존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인간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간과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자연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의 설명이고 해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질적으로 신화가 추구하는 것이 철학하고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기본적인 신화에 대한 판단이다. 즉 철학이 모양새는 고급의 표현의 양식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자의 도래라는 인간의 의식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복잡한 구조로 진행된 상황으로 인해 인간의 의식 구조에 있어서 야기된 복잡성으로의 진일보를 보여주는 것이지 인간 자신과 인간과 공존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배반하여 나타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이라는 복잡한 인간의 언어적 논리 구조 체제는 단순한 원시적 채집 사회가 가지고 있던 그래서 인간이 필요한 사고는 단지 단순하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류와 공존했던 자연에 대한 해석을 어떤 상상적인 형태로 보존하고 있었던 사회와는 달리 농경 사회로 접어들고 물적 교류가 발생하는 시점에서는 그에 걸맞은 복잡하고 합리적인 체제가 필요로 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생산 틀이 복잡하고 고도화되어 감에 따라서 인간의 사고 체제가 보다 더 복잡하고 합리적인 체제로 변모했다는 것이 단순하면서 적확힌 철학에 대한 이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간의 생존 전략

더욱 이러한 복잡화하는 인간 사회의 복잡화가 형성됨에 따라서 그러한 복잡성을 띤 사회적 양식을 유지하는 틀로서 지적 영역이 전문화되고 동시에 독점화되어 더 이상 지적인 능력이라는 것이 민중이 접할 수 없는 성역까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이라는 학문은 복잡한 사회적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는 사회에서 출현되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한 언급이며 이러한 사회는 상대적으로 물적 토대가 기타의 사회보다 더 높은 상태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사항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이라고 불리는 고등의 인간의 인간과 안 간과 공존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고등한 인식 능력은 일정하게 물적 토대를 갖춘 사회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들이 어떤 영역에서든지 - 음악, 미술, 건축, 그리고 심지어 와인에서까지 - 고급의 것들을 찾는 행위는 이러한 복잡성의 체제 속에서 맨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생존 전략임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 철학이 그리스 본토에서가 아니라 그리스 식민지인 이오니아 지방에서 - 현재의 터키 -시작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일이다. 이 말은 고등의 학문적 논리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물적 토대뿐 아니라 어떤 지적 분위가 형성되기도 하여야 한다는 이기도 한데 아마도 이곳 이오니아 지방이 상대적으로 그리스 본토보다 더 나은 자유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지녔지 않나 싶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이제는 인간이 이전과는 달리 어떤 상상적 체제에 의지하여 인간과 자연을 해석하기보다는 논리적 적확성을 가지고 인간과 자연을 해석하려는 의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 말은 신화적 세계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구분 없이 존재하는 하나의 틀 안에서 파악되어서 인식되는 직관적인 것이으나 이제는 인간과 자연의 조건을 넘어서는 어떤 궁극적인 질적 상태를 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신화에서는 자연은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이고 그러므로 인간은 어떻게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공존하여 살아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면 철학의 세계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질적 싱태를 찾음으로써 그것에 의존하여 인간의 안녕된 체제를 기하려 하는 데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태도

소위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이러한 어떤 변하지 않은 질적 상태를 찾은 서양에서의 최초의 시도라고 하겠다. 이오니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이러한 변하지 않은 질적 상태를 찾기 위한 시도는 결국 자연을 주어진 조건으로서 수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자연에서 발견된 질적 상태를 활용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이용할 수 있고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고 결국 이것은 인간을 자연과 구분하여 인식하는 인간 주도적인 사고방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 자연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신화적 세계관이 가지고 있었던 자연의 조건과 그것에 힘에 대한 대한 무조건 수용의 태도로부터 전진하여 자연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변하지 않은 규칙성을 보고자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으며 그리하여 이로부터 한편으로는 모든 자연과 자연현상 뒤에 숨어 있는 규칙성을 캐고자 하는 인간의 과학적 세계관이 열리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으며 동시 슬프게도 이러한 어떤 변하지 않는 규칙성 위에 존재하는 질적 상태에 대한 탐구는 자연 속에 자연과 함께 숨으로 존재하는 신에 대한 세계를 고정되고 변하지 않은 규칙성 위에 존재하는 질적 상태의 신의 개념을 상정함으로써 인간과 자연과의 신과 인간과의 빛과 어듬과의 이성과 감성과의 남자와 여자와의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나와 우리와의 적대적 분리를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인간과 자연에 있어서 어떤 변하지 않은 규칙성의 질적 상태가 있음을 깨닫기는 했으나 그것에 대한 전적인 전면적인 탐구에의 몰입이라는 상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정도여서 결국 이러한 질적 규칙성에 인식을 종교적인 상태로 신비화하기 시작하는 데 그것에 대한 가장 비근한 예로서 수에 대한 추상성을 본격적으로 인식했던 피타고라스가 현재의 시칠리 땅에 수(number)를 대해 숭배하는 종교적 신비한 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했던 것에서 여실하게 그 모습을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그리스 신화가 가지고 있는 -당시에 많은 철학자들이 신화적 세계관을 하찮은 미신 같은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하였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엄연하게 그리스 시대를 이끌어가던 가장 중요한 축이었던 -잉여 생산물을 위한 인간에 대한 공격성 함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제는 자연과의 분리를 통해서 그 공격성의 정도를 자연까지 넓히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그리스인들의 자연과의 적대적 태도로의 돌입은 모두 부정적인 것만을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결국에는 이러한 태도가 그리스인 이외에 다른 모든 이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처럼 자연과의 적대적 관계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인 이외에 다른 인간들에 대한 적대적 관계로의 확대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 사회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적대적 관계의 성립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즉 그리스 자유민들이 누렸던 지적 자유와 민주주의적인 정치 형태는 자유민의 수보다 몇 배나 많은 노예들의 노동에 의지하여 유지하고 있었던 바 어떤 변하지 않은 질적인 상태의 추구라는 것이 계급적인 측면에서는 결국 변하지 않은 질적 상태의 인간의 항구적인 안녕을 염두에 두고 나온 고급의 정신적 산물임을 놓치지 않고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이 그들의 삶에서 요청되는 자연 속에서 사물의 변하지 않은 규칙성을 발견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것을 신비화하고 철학화 시켰을 때에는 인간 사회 속에서 그것을 적용코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반드시 인식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변하지 않은 질적 상태에 대한 요구로서 출발되는 그리스적 철학은 결국 변하지 않은 인간 계급을 상점함으로써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지유민들의 안녕을 꾀했다는 데에서 근본적으로 그리스 신화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고와 기본적으로 동일선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왜곡된 그리스 세계관

이후 플라톤에까지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의 일관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은 어떤 숭고한 존재를 상정함으로써 노예 노동의 잉여적 생산물로 살아가는 그리스 자유민들의 변하지 않는 숭고성을 계속적으로 강조하였던 것이며 이는 이후 로마로 중세사회로 그리고 현재까지도 남아 있어 여전하게 인간 사회 속에서 어떤 특정한 인간들의 불변하는 숭고성을 보장하는 철학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신화 속에서 간직하고 있었던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에 대한 논리가 이제는 불변하는 존재를 새롭게 상정함으로써 기타의 변하는 존재들에 대한 경멸과 멸시를 논리적 바탕 위에서 행할 수 있는 복잡한 시대에 걸맞은 고등의 논리를 새롭게 적용되어 개발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가 인간의 역사에 제공했던 가장 큰 기여는 가깝게는 중세 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변하지 않은 존재를 섬기는 존재가 천 년 이상이나 지배를 연속케 했던 암흑의 세월이었고 멀건 르네상스를 통하여 불변하는 존재에 대한 지나친 확대로 왜곡된 그리스 세계관을 재정립하여 그들의 중세적 삶에 끌어 들어옴으로써 본격적으로 그리스 세계관을 통해 근대의 필요한 적대적인 관계에 바탕을 둔 정복적 적용에 있다고 하겠다. 바이런 같은 낭만주의자들의 영향 때문에 흔히들 중세를 그리스 철학과는 무관한 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데 이는 정말로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기에 가능한 생각이다.

인식론적 뿌리

중세는 정확하게 플라톤으로 대변하는 고대 그리스적 전통에 세워진 체제이다. 그것이 한쪽으로 치우쳤다 하더라도 사상적으로 보면 그 자양분은 그리스적 요소에 뿌리를 확고하게 박고 있는 그리스의 자손인 것이다. 바이런 같은 부류의 그리스에 대한 이상화는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자. 어쨌든 지금까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결코 자연주의자가 아님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날 서양 사상에 온존하고 있는 공격적 성향의 인식론적 뿌리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철학하는 원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이야기하였다. 결국에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공격성 제고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항임을 말하였다. 이렇게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주도권을 잡은 그리스 문명이 오늘날까지 지배하는 사고가 되어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자연철학에 대한 저의 생각을 리뷰해보았습니다.